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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뉴스 앵커와 드라마 사이에서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2호 문화공간에 실린 글으로서 앰네스티의 입장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Private                      이영주 존엄사회연구소장

2011년이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창훈씨가 세계 최초로 지상파방송 뉴스 앵커로 채용된 해였다. 당시 KBS는 “시각 장애인이 뉴스의 고정 코너를 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1년이 지난 2012년 그는 계약 해지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앵커로서 요구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누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KBS 또한 시각 장애인 앵커의 원활한 뉴스 진행을 위해 다각도의 기술적, 조직적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 두 당사자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또 텔레비전 뉴스를 장애인 앵커가 진행할 수 있다는 매우 ‘정상적’이지만 ‘놀라울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새로운 경험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좌절되는 것 같아 더 속상하다. 누가 후임자로 왔는가에 상관없이 지상파방송의 그 많은 뉴스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장애인의 몫은 딱 한 자리다. 그 딱 한 자리마저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시각 장애인 오영(송혜교)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시각장애인의 모습과 달리 그녀는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기의 몸매를 가꾸고 화장을 하며 하이힐을 신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아름다운 배우를 내세워 시각장애를 오히려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보면서 어떤 경우가 더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 후자보다는 전자가 분명히 옳지 못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래되고 끈끈한 편견에 파열음을 냈다. 장애인은 원래 남성이나 여성적 섹슈얼리티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없을 것이라고 간단하고 편하게 간주해버리는 우리의 화석화된 믿음에 도전을 했다. 장애인을 마치 거세된 존재인양,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욕구와 욕망이 없는 존재인양 묘사하거나 그렇게 대해왔던 우리의 ‘비장애인적 정상성’의 시각에 일침에 가하는 드라마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리 옳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KBS가 시각장애인 뉴스 앵커 채용을 늘리지는 못할 망정 1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앵커로서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던 앵커를 급하게 계약해지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도 없고 또 동의하기도 어렵다. 또 KBS가 자신들의 말 그대로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 시도하고 축적했던 기술적 노하우나 조직적 팀워크를 너무 간단한 문제로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단체나 다른 몇몇 언론에서 비판했던 것처럼 생색내기 홍보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장애인 앵커를 추가 채용하는 듯한 광고를 내놓고 결국은 기존의 앵커를 대체해 버리는 꼼수는 참으로 옳지 못하다. 그것도 단 1년짜리 계약서를 가지고 말이다. 1년짜리 계약은 생색은 내야겠고 계속은 못 쓰겠고 다른 앵커들과 동일한 처우도 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뉴스 앵커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KBS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역시 공영방송사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KBS는 그 어떤 박수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오히려 무엇인가 속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뿐이다.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미디어 정책에 대한 논의들이 끊임없이 있었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이나 화면해설방송 정책을 포함하여 모든 장애인이 자신이 가진 어떤 장애에 상관없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논의들이 꽤 성숙해지고 있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책,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인터넷, 광고 등 제반 미디어의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조장하거나 고착된 정상성의 시각의 폭력이 재생산되지 않도록 미디어 생산자들의 노력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그동안 이같은 미디어 정책은 전체적으로 ‘장애인을 위해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라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대부분의 정책 담론들 또한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그럴 만한 경제적, 기술적 여유가 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이같은 소극적인 장애인 미디어 정책은 여전히 장애인을 어떤 배려나 지원의 대상 정도로만 간주하게 만든다. 장애인 또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키워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장애인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사회적 범주로 접근하지 못했다.

모든 인간이 미디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즉, ‘항상’,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장애인과 미디어가 맺는 관계 또한 그렇다. 지금까지 장애인과 미디어의 관계가 미디어 접근성과 같은 복지적 차원이나 편견 조장의 방지와 같은 윤리적 차원에서 형성되었다면, 이제 미디어는 장애인을 그냥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존재로 관계맺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처럼 그냥 한 인간으로서 장애인의 삶과 욕망, 사랑과 사회적 관계들을 그려낼 수 있는(물론 이 드라마가 이것을 목적으로 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노력을 하듯이, 미디어 종사자들이 장애인과 동등한 관계맺기의 훈련을 해야 한다. 이같은 차원에서 본다면, KBS는 장애인이 앵커의 자리든, 배우의 자리든, 토크쇼의 진행자의 자리이든 그 어떤 자리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아야 하고, 장애인에게 무슨 엄청난 선행을 베풀듯이 생색내려는 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 장애인 작가 폴 헌트(Paul Hunt)가 1996년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 장애인들은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끌어내기 위해 어떤 통계치로서, 어떤 사례로서, 놀라울 정도의 용기있는 존재로서, 그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는 것에 너무나 피곤함을 느낀다.” KBS가 혹시 시각 장애인 앵커를 내세워 무엇인가 엄청나고 선한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정도로 활용하지 않고자 한다면, 방송에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조건들을 확보하는데 그 누구보다 앞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이나 어른들의 이야기들, 텔레비전 등을 통해 장애에 대한 고착된 의식을 형성해 간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적 의식들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미디어가 장애를 어떤 식으로 묘사하고 이미지화하는지 그리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심지어 장애인을 돕고자 제작되는 자선 광고와 같은 것들이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의 통로이기도 하다. 불쌍하고, 무력하고, 의존적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하기조차 버거운 이미지들이 자선 광고에 가장 많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이다. 동시에 장애인이 거세되고 무능력한 존재로서 단지 복지의 대상 정도로만 인식되지 않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다양한 미디어와 예술의 영역에서 그들이 가진 능력과 재능들을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 봄, 장애인과 미디어의 관계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일러두기! KBS는 이창훈 앵커의 계약해지에 대한 논란 끝에 2TV 교양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의 고정 코너를 맡긴다고 밝혔기에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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