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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주거권 활동가의 한국 방문기: 캄보디아, 용산을 만나다

용산은 나에게 즐거운 곳이었다. 신용산역에서 내려 주변 상가를 구경하며 백화점을 가는 것도 백화점 아래 대형 할인점에서 부모님과 장보는 것도 즐거웠다. 대학에 들어와 다시 용산을 찾아갔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주변 상가는 모두 사라지고 공사가 있을 것을 알리는 거대한 철판만이 세워져 있었다. 용산은 사람냄새가 사라진 곳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캄보디아가 있다. 장사하고 거주하던 사람을 강제로 퇴거시키고 개발을 이유로 호수를 메워버려 사람 냄새를 잃어버린 모습이 용산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지난 9일 캄보디아에서 온 보브 소피와 섹 소쿤롯, 용산참사 유족 유영숙씨 그리고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 미류가 만나 개발과 강제퇴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캄보디아 용산을 만나다 캄보디아 강제퇴거 활동가 욤 보파의 석방을 위해 마음을 모았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1. ‘섹 소쿤롯’과 ‘보브 소피’의 벙깍호수 이야기

소쿤롯: 벙깍은 프놈펜 중심에 있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입니다. 주민이 농사와 어업을 하는 중요한 곳이죠. 2007년 정부가 이 호수부지를 사기업에 임대해서 80년대부터 거주하던 주민을 쫓아냈습니다. 개발은 주민에게 불쾌한 단어가 되었고 주민의 눈물을 불러왔습니다.

소피: 벙깍에서 강제퇴거가 일어나면서 저는 어머니로서 이름을 잃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직업을 잃고 감옥으로 보내지면서 가족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벙깍은 비폭력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개발은 가족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습니다. 욤 보파는 아직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보파가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보이던 소피는 이번에도 말을 끝마치기 전에 다시 눈물을 보였다. 감옥에서 풀려나고도 어머니로서 이름을 잃어버린 소피가 감옥에서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 보파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 속에 무엇이 담겼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벙깍호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는 보브 소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강제 철거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곳, 용산. 추운 겨울, 그곳에선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고 그 속에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지만 번듯한 건물 하나 들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유영숙씨의 이야기를 듣기 전, 남일당이 사라진 공터를 찍은 영상을 보았다.

2. 용산참사 그 후, 개발이 멈춘 곳

유영숙: 재개발로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철거가 이루어지는 동안 경찰은 등을 돌리고 용역은 밤낮없이 폭언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저와 우리 아이는 남편의 투쟁을 말렸지만, 남편은 “우리 가족만 편하게 살자고 권리를 포기하면 누구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용산으로 향하던 날도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한다며 남편은 떠났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투쟁을 나가면 집에 오지 못할까 봐 말립니다. ‘재개발’이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재개발은 정체되었고 제가 장사하던 순화동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연대하며 투쟁할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퇴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구나 국가폭력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막이 쳐진 재개발 지역퇴거 민에게 한 마디의 힘이라도 주세요.

대중강연에서 용산참사의 상황을 설명하시는 유영숙씨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용산과 캄보디아는 공통점이 많았다. 소피의 동생은 유산했고 유영숙씨는 남편을 잃었다. 두 사람 모두 가족 일부를 잃어버리면서 공동체를 위해 더 열심히 싸우고 있다. 소피는 ‘나의 문제는 당신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요’라고 말했다. 오늘은 그들의 일이지만 내일은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는 힘든 싸움에 모두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강제퇴거가 시작되는 자리

미류: 누군가 우리 앞에서 울 때, 내 앞에서 울어준다는 사실이 고맙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낸 삶과 우리가 같이 사는 세상에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지 준비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많이 힘드시겠네요’라고 쉽게 얘기하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같이 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 단체가 세를 들어 사는 집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가 문득 ‘계속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옮기지?’란 걱정이 들었습니다. 우리 단체가 세를 들어 살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살고 있으면서 공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강제퇴거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네요.

한국의 강제퇴거-개발의 중단

캄보디아는 서울의 80년대와 참 닮았습니다. 집의 모습도 퇴거의 방식도 닮았습니다. 공무원, 경찰들이 무조건 끌어내고 그에 대항하여 주민이 함께 싸우다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풍경이 닮았습니다. 용산은 조금 달라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 때는 ‘왜 부숴야 할까?’ 의문이 드는 멀쩡한 집을 개발하는 뉴타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동네는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섞여 있기 때문에 강제퇴거가 드러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퇴거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함께 싸우기가 어려워졌어요. 벙깍호수는 많은 분이 마을에 남아서 함께 힘을 모으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핵심은 개발이 멈춘 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개발이 멈춘 그 곳에서 철거민이라 불렀던 분들이 개발을 멈추라고 싸웠는데, 차라리 개발하라고 말하고 싶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조합을 찾아가면 ‘우리도 빚더미에 앉았다’, 지방자치단체에 가면 ‘우리가 하던 사업도 아니고 무슨 책임이 있느냐?’, 건설자를 찾아가면 ‘지을지 말지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삶이 일순간 바뀔 수 있는 어떤 상황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주지 않는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게 한국 사회 개발사업이 지닌 문제입니다.

명도소송-강서구 한 카페 이야기

한 카페가 있었습니다. 2010년에 영업을 시작했는데, 2011년에 집주인이 가게를 빼달라고 합니다. 돈 문제도 있지만, 장사를 시작하면서 마을주민과 하고 싶었던 일들이 생겼고, 골목에 사람들이 다니면서 활기도 생겼는데 갑자기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게를 빼지 않겠다고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구청에 찾아가니 민사문제니까 행정기관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집주인에게 찾아가 사정도 하는 사이에 집주인은 명도소송*을 걸었어요. 쉽게 말해서 강제로 사람을 쫓아낼 귄리를 얻는 소송이죠. 그리고 명도소송에서 졌습니다.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게가 건물주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보증금 반환 권리만 보호할 뿐 그 외 헌법이 보장하는 우리의 권리를 짓밟고 있기 때문에 법이 문제고 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도소송: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낙찰받고 대금을 지급한 후 6개월이 경과됐음에도 점유자가 자진해 집을 비워주지 않을 때 낙찰인이 관할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이다. 승소 판결을 받으면 강제로 점유자를 내보낼 수 있다. (출처: 매일경제)

삶에 대한 권리

하지만 우리가 보호할 세입자의 권리는 돈에 대한 것 이전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집 혹은 가게에서 이미 가꿔왔거나 가꾸어가려는 삶 자체여야 합니다. 건물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거주하거나 장사하는 사람의 삶까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제퇴거에 대한 싸움들은 단지 ‘쫓겨나지 않겠다’는 싸움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장소에서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어도 건물에서 내가 살려는 방식을 사회는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싸움입니다. 용산에서 망루에 올라가신 분들이 단순히 돈이 없어서 올라가신 걸까요? 그분들은 내 삶을 내가 살고자 하는 바대로 살 수 있도록 사회가 노력하자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누군가 넌 이렇게 살라고 명령했을 때 함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용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 왜 그곳에 올라야 했고, 경찰은 왜 진압해야 했는지에 대한 힘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질문을 각자 삶의 장소에서 우리의 질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철거민은 ‘나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말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상황이 올 것을 상상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강제퇴거를 당하는 현실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상상해봄으로써 눈물에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건물에 세를 들어서 장사를 하고 거주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삶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안정되지 못한 삶을 안고 사는 우리 역시 퇴거의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계획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권리다. 우리는 삶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 삶의 밑바탕에 우리가 장사하는 공간, 우리가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이 있다. 왜 우리는 이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없는가?

강연자와 참가자 간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4. 질의응답

Q: 캄보디아에 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석방을 위해서 노력하는 연대의 모습에 감동을 하였습니다. 영상에서 캄보디아인이 아닌 분이 보였는데 국제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나 궁금하고, 석방되지 않은 분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해주세요.

소피: 우리는 외국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특히 시민사회에서 온 친구들이 많습니다. 감옥에 간 15명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올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의 일환입니다.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주시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쿤롯: 정부의 개입 이후 외국인의 수가 조금 줄었습니다. 정부는 많은 외국인이 참여를 하는 이유가 캄보디아 사람들이 선동해서라고 합니다. 때때로 외국에서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요. 멀리 있기 때문에 직접 오시지는 못하시지만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목소리를 내주시는 것을 통해서 힘을 보태주실 수 있습니다. 기술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페이스북이나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 리카도(Licahdo)를 통해 방문해주실 수 있습니다.

Q: 서대문구 모래내에서도 재개발이 되고 있어서 저희 할머니도 피해를 보셨습니다. 시장이 철거되면서 쓰여있는 말을 지나가면서 봤는데, 이 자리에서 다시 생각나서 가슴이 아픕니다. 학생들은 사실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어떻게 이러한 인식을 재고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미류: 2009년에 뉴스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실을 모르는 것은 사건을 알고 모르는 것을 떠나서 어떻게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떼쓴다’, ‘불법이기 때문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화재가 발생해서 사람이 죽었다’가 한국사회가 용산을 설명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고 이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용산과 캄보디아가 겹치듯 우리 삶에서도 그 겹치는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Q: 언론 쪽으로 진로를 하고 싶은 고등학생 회원입니다. 서명을 많이 받는 것도 좋지만, 언론에 보도되면 더 좋은데, 두 곳의 정부가 보도를 막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소피: 캄보디아 방송이나 신문 중 독립성이 있는 곳은 없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사실을 알기 위해선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을 듣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우리가 페이스북과 같은 기술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을 겁니다.

알렉스: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언론통제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 다루는 기사들은 대부분 친정부적입니다. 만약에 진실된 사건을 보도하거나 정부에 반하는 내용을 했을 경우 체포되거나 폐쇄됩니다. 언론인 맘 소난도(Mom Sonando)도 진실을 이야기하다 잡혀갔었습니다. 이 것 외에도 많은 언론 통제가 있습니다.

유영숙: 용산은 사실 언론에 많이 나왔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사들이 취재할 때, “왜 나오지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취재를 하지만 위에서 막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사기록이 3000쪽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500쪽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500쪽은 초반 수사기록이기 때문에 진실이 많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국민이나 시민들의 눈과 귀를 다 막았던 것 같습니다.

두 손을 마주잡은 캄보디아의 보브 소피와 용산참사 유족 유영숙씨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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