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길 위의 사람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F2F 캠페이너 박초록입니다. 작년 12월 첫 주에 들어와 현재까지 지난 3개월 동안 혹독한 겨울을 앰네스티, 그리고 거리의 시민들과 함께 보내며 겪은 수 많은 에피소드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다른 지하철역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7호선 온수 역사 내에서 캠페인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날씨는 추웠지만, 역이 지상에 위치해 있어서 햇살이 사방의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덕에 조금은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겨울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캠페인이 대부분 지하철 역사 내에서 진행되다 보니 해를 볼 기회가 잘 없었거든요.

시민 분들께 인사를 드리던 중, 할아버지 한 분께서 앰네스티 부스로 천천히 다가오셔서 설치해 놓은 포스터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할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 앰네스티가 하는 일과, 역사,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 그리고 참여방법 등을 간단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길거리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어르신을 만날 때는 유독 긴장을 하게 됩니다.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무관심한 시민의 반응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가끔 어르신들이 앰네스티가 하는 활동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호통을 치시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변화를 논하는 것이 어째서 “젊은 것들이 뭘 모르고…” 혹은 “빨갱이 놈들!”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말을 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보니 거리 캠페이너로서 가져서는 안 될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포스터 앞에 서 계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사실 속으로는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인데 회원참여 의사가 과연 있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할아버지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동복지 단체에 오랫동안 기부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동시에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앰네스티에 참여를 해보고 싶으시지만 정기 후원금 만 오천 원이 조금 부담스럽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상태라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일자리 센터 몇 군데를 들러 할 일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하루 일과라 하셨습니다. 운이 좋으면 일거리를 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가신답니다. 저를 만난 그날도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시고 쓸쓸히 귀가하시던 길이라면서요. 게다가 하루에 한끼 정도만 대충 밥에 김치로 때우며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앞으로의 희망이기 때문에 그 쪽에 후원은 힘들어도 계속 하고 있다 하시는데, 갑자기 평소 감수성이 제로인 저의 가슴은 갑자기 먹먹해졌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 때 갑자기 이전에 만났던 한 남자분이 떠올랐습니다. 한참 추위가 매서울 때였고, 취객이나 홈리스를 쉽게 만날 수 있던 다이내믹한(?) 분위기의 영등포역에서 있었던 일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캠페이너들이 눈에 띄는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캠페인을 하다 보니, 다양한 시민분들이 눈여겨보시고 찾아오십니다. 특히 영등포역 같은 곳에서는 취객이 찾아와 설교를 하거나, 커피나 돈을 달라는 분들도 있었고, 한 번은 필드매니저에게 바지를 벗어달라던 분도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었던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만큼 캠페인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역사 내 파출소에 수시로 도움을 청해야 했을 정도로, 어떤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캠페인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겹겹이 걸치고 커다란 낡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한 남자분이 저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자, 오랫동안 잘 씻지 않으신건지 세탁을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냄새가 풍겨왔고, 아직 젊은 나이로 보였지만 치아도 몇 개 없어 한눈에도 홈리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정기후원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스를 찾아오는 모든 분들의 생생한 인생살이를 다 듣고 싶지만, 근무 중에는 캠페인과 관련없는 담소를 나누려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 선을 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제 설명을 들으시자 마자, “음, 좋은 일 하는구만. 나도 할게!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무 흔쾌히 참여의사를 밝히셔서 조금 놀랐고, 미리 선입견을 가진 것에 조금 창피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회원 가입 약정서를 작성하기 시작하시면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셨는데요. 개인정보 기입란의 이메일, 집 주소를 적지 않으시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컴퓨터는 할 줄도 모르고, 집이 없어서 찜질방에서 지낸다고 하시는 겁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쪽 눈을 계속 깜빡거리시면서, “에이, 못하겠네. 아가씨가 대신 써줘.” 하시며 통장을 내미셨습니다.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여쭤보았더니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어서 평생 모은 돈을 다 사기 당하는 바람에 치료 시기를 놓쳐, 한쪽 눈이 실명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통장을 건네주시는 거친 손에서 그 힘겨웠을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후원 정보를 대신 써드리면서 최소 후원 금액이 만 오천원부터 라고 말씀 드리니, 현재 2만원씩 네 군데 단체에 후원 중이니 여기 2만원 더해서 딱 10만원 채워보자 하시면서 “내가 노가다 뛰는데 하루에 일당을 10만원 넘게 받을 때도 있어. 그럼 한 달에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데 돈 2만원씩 몇 군데 후원 못하나? 좋은 일 많이 할수록 좋은건데, 그까짓 10만원 일도 아니지.” 라고 말씀하시며 껄껄 웃으시는데, 제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라도 하나 쿵!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너무 편하게 살면서 불평불만만 많았던 것은 아닐까? 받고만 살고 나눌 줄은 잘 몰랐구나. 게다가,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하는 분을 집 없는 거지로만 봤구나. 내가 더 못난 사람인 주제에 옹졸하고 오만하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웰컴팩을 받아 들고 부스를 떠나시는 아저씨는 너무나 밝고 기분 좋아 보이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계셨지만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워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지난 후에는 과자도 먹으라며 사다 주고 가셨어요. ‘거리에서, 이 삶의 현장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구나’ 마음으로 생생히 느낀 날이었습니다.

다시 온수역에서 만난 할아버지와의 만남으로 돌아가, 할아버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저로서도 할아버지의 생활고를 듣고 난 이후에 후원 재권유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앰네스티의 활동에 정말 깊은 관심을 보이셨기에 부담이 적은 수준으로 정기 후원금을 낮춰 참여해 보시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만 원 정도면 해보겠다고 결정하셨고, 제가 지금까지 만나온 새 회원들 중에 가장 고령인 앰네스티 회원이 되셨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못해요.” 혹은 “인권보호? 그런 것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냐?” 라는 많은 망설임의 순간들을 매일 마주합니다. 그러나 청소년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시민 분들이 앰네스티의 F2F(Face-to-Face) 거리캠페인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변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그 관심이 참여로 이어지는 감동의 순간은 시민 분들의 작은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용기 내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인사하고 다가가겠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세요 :)

by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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