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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왜 조커를 죽이지 않았나

사형 찬성/반대는 무겁고 어려운 주제다. 정치나 종교 문제와 비슷하다. 좀처럼 설득하기 힘들고 입장을 바꾸는 사람도 많지 않다. 논술시험에 사형찬반론이 단골 주제로 등장하는데, 사형에 찬성하는 것은 대개 감정적인 이유들뿐이라 합리적인 논증을 펼치기 위해서 반대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시험장을 벗어나 현실로 오면 사형 찬성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강간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가 결부되면 더욱 그렇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인지라, 감정을 빼놓고 입에 바른 말만 한다 하여 설득이 쉽게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이길 포기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죽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은 사형반대를 주장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부담스러운 주제인 사형을 보다 친숙한 매체인 영화로 접근해보고 생각해볼 여지를 가져보는 글이다.

 

배트맨은 모순적이고 복잡하다.

그의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보는 이에게도 의미심장 할 것이다

배트맨에게서 우리 안의 용맹과 두려움, 그리고 어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영화 <다크나이트> Special Features의 ‘From Batman unmasked the psychology of the Dark knight’ 중 – 

“배트맨에겐 한 가지 규칙이 있어요. 살인은 안 한다는거죠.”

– 찰스 로벤, 제작자

“그는 폭력이나 복수, 사악한 충동 같은 본능을 억누르려고 노력해요.”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Warnerbros

“도대체 왜 배트맨은 조커를 죽이지 않는거야!?”

영화 <다크나이트>를 본 관객들 중엔 분명히 이와 같은 의문을 품은 이들이 있을거라 장담한다. 분명, 배트맨에게는 조커를 죽일 기회가 있었다. 아니, 기회는 둘째치고 동기가 충분하다. 조커는 배트맨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다. 조커가 폭탄으로 터트려 죽인 레이첼 도스는 배트맨의 소꿉친구이자 일생의 연인이었다. 그런 그를, 배트맨은 끝끝내 죽이지 않는다. 마지막엔 추락하는 조커를 끌어잡기까지 한다. 그냥 놓아두었으면 조커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산산조각 나버렸을텐데. 조커에게 죽임 당한 피해자들의 유족들과 공포에 떤 고담시민들 역시 그게 희대의 악당 조커에 걸맞는 최후라고 생각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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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이런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트맨이 되기 전의 브루스 웨인을 다루고 있는 <배트맨 비긴즈>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직접 죽여 원수를 갚으려한다. 뜻을 실행하기 직전, 마피아 두목 팔코니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는 그를 대신 죽여버린다. 이에 대해 브루스 웨인은 레이첼에게 “그들에게 감사해야겠군”이라며 “부모님이 응당 받았어야 할 정의야”라고 말한다. 레이첼은 “네가 말하는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일 뿐이다”라고 반박한다. “정의란 조화에 관한 것이고 복수는 네 기분만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루스의 부모님의 피살은 단순히 한 명의 악인이 행한 범죄가 아니라, 도시가 타락하고 사회 시스템이 병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정 범인을 대상으로 분노하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더 거대한 악을 보라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총을 꺼내보이는 브루스에게 레이첼은 “네 아버지가 널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실망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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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브루스는 그 자리에서 당장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레이첼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전부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어둠의 사도(league of shadows)’의 일원이 되는 의식의 일부로 범죄를 저지른 농부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브루스는 그것을 거부한다. 브루스는 여기서 “난 사형집행인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를 그들(살인자)과 구분 지어준다. 이 자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로, 배트맨이 되고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살인을 하지 않는다. 배트맨은 법을 신뢰하지 못해서 직접 자경단으로 활동하는 초법, 위법적인 존재다. 경찰도 그를 무법자로 규정하고 체포에 안간힘이다. 그런 그가 ‘체포’는 직접 하지만 ‘처벌’은 사법체계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언뜻 보기에 상당히 모순적이다. 이는 브루스에게 항상 사회에 공헌하고 더불어 살기를 가르쳤던 아버지[1]와 일생의 연인 레이첼의 영향이리라. 특히 미치광이 조커를 죽이지 않는 것은 레이첼의 영향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레이첼 도스는 브루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비록 전해지지 못하지만)에까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충고한다. 복수와 정의는 다른 것이고 자기만족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는 레이첼이었기에 그녀의 복수를 한답시고 조커를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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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1939년 밥 케인에 의해 창조되어 <디텍티브 코믹스>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대공황의 시대였고, 팽창되는 도시에 폭력과 범죄가 만연한 때였다. 단순한 영웅이었던 배트맨은 20세기말, 작가들과 영화제작자들이 심리적인 동기를 부여하면서 더 어둡고 대담하며 더 현실적인 존재가 되었다. [2] 

거대하고, 복잡하고, 군중은 넘쳐나지만 개인은 소외되고, 법 체계는 평등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으며, 공권력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신과 일상화된 불안까지. 고담시는 여러모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 도시를 닮았다. 브루스 웨인이 가진 막대한 부(富)는 비현실적이지만 가면을 쓰듯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도시에서 매일 같이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은 영웅 이전에 평범한 인간으로서 배트맨을 더 공감하게 한다. 배트맨의 원작 코믹스 판권을 가진 DC Comics과 <다크나이트>의 제작자들은 한결 같이 배트맨이 ‘슈퍼히어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돌연변이 거미에 물리지도 않았다. (배트맨이 레이첼을 구할 수 없었는데 반해 슈퍼맨은 지구를 거꾸로 돌려 죽은 여자친구도 되살린걸 비교해보라)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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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애인을 잃은 아픔으로 그 스스로 정당화하여 살인을 거리낌 없이 하는 배트맨을 상상해보자. 세상과 사회에 분노로 가득찬 배트맨을 말이다.

복수심에 불탄 배트맨이 조커를 잔혹하게 죽여버리고 다른 범죄자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인다면. 그리고 그런 배트맨을 당신의 아이가 우상으로 여긴다면.

배트맨이 상대가 범죄자라하여 살인을 마음대로 저질렀다면 박쥐가면을 쓴 사형집행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년은 바로 눈 앞에서 부모가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봤다.

이 경험은 소년의 성격,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소년은 자라서 배트맨이 되었고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을 구원했다.

무엇이 배트맨을 배트맨이게끔 만드는가. 무엇이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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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음을 밝힙니다. 다크나이트 3부작 블루레이를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브루스 웨인의 모델이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라고 직접 밝혔다. 루즈벨트의 선친은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과 마찬가지로 사회공헌에 헌신적이었다.

[2] Batman unmasked the psychology of the Dark knight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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