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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존중의 유리벽 사이 : 마포구청의 성소수자 현수막 게시불허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1호에 실린 글으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인권 존중의 유리벽 사이

나영 /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지난 해 12월, 서울 마포구에서 기가 막힌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이하 마레연)가 마포구 관내의 현수막 게시대에 걸고자 했던 두 종류의 현수막에 대해 마포구청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포구청이 말한 ‘조건부’란 현수막의 문구가 ‘주민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고’, ‘청소년에게 유해하니’ 문구와 그림을 수정해야 게시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엄청난 현수막의 문구는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와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이다. 도대체 이 문구의 어느 부분이 그토록 혐오스럽고, 유해한 것인지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라는 문구와 손가락으로 ‘여기’를 가리키는 부분, 현수막 배경 아래 부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반신(어깨 정도까지) 그림이 옷을 입지 않아서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항의가 거세지자 마포구청은 ‘살고 있습니다’로 바꾸라는 둥 납득할 수 없는 조건들만을 제시하며 현수막 게시 허용을 계속해서 거부하더니 결국, 심의회의까지 개최해 똑같은 결론을 내려버렸다.

심의회의 이후 마레연은 마포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심의회의 회의록을 받아보았다. 이 회의에서 ‘전문위원’이라는 이들이 발언한 내용들을 보면 문제가 더욱 명확히 보인다. 요컨대, ‘열 명 중 한 명이 성소수자’, ‘LGBT’라는 표현이 ‘과장되고 직설적인 내용’이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알리고자하는 의도는 이해되지만”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생각하는 ‘이해할 수 있는 의도’란 무엇일까? 아마 현수막 문구가 ‘성소수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는 정도의 내용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 이 동네에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는 ‘직설적인 존재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동안 차별금지법이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등의 주요한 법률 제정의 과정에서도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구체적인 문구로 포함하는 데에는 지난한 싸움이 필요했다. 쟁점을 피해 법을 일단 제정하고자 하는 이들은 ‘…등’에 언급되지 않은 차별도 포함될 수 있으니 일단 제정하자고 했지만 구체적인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쟁점이었다. 우리는 이토록 너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이제 인권은 어느 정도의 ‘상식’이 되었다. 누구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성적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이 명시되는 법률이나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일일이 반대하는 이들도 ‘우리도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를 제외한 공간, 나와 관계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의 문제일 때만 가능한 조건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문제가 되고, 내 공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될 때, 쉽게 이야기되던 타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은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비단 성적소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 이주민, 빈민 등 차별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들에서 같은 맥락의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이 자신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차라리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저마다의 유리벽 안에서 밖을 보며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공간인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그 당사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사실 마레연의 ‘동네 커밍아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라는 모임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가 계속해서 시도했던 일은 ‘우리도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다 보니 어느 새 우리 스스로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자기 자신을 분리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든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없어야 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로서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공간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래야 인권 또한 어떤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의 삶 속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러니 우리는 마포구청이 아무리 거부해도 끝까지 인사를 건넬 것이다.

“안녕하세요! 우리 여기 있어요! 함께 살아요!”

* 뒷이야기.

1) 마포구청의 현수막 불허 사건 이후, 마레연의 현수막 행동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용산구와 성북구, 은평구에서도 주민들이 똑같은 문구의 현수막을 걸고자 시도했다. 성북구와 은평구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현수막이 걸렸고 용산구에서는 마포구청과 다를 바 없는 태도로 현수막 게재를 거부하다 최근 약간의 문구 수정 끝에 현수막을 게재할 수 있었다.

2) 대선 이후 김소연 후보는 마포구의 16개 동에 마레연의 문구를 그대로 적은 현수막을 낙선 현수막과 함께 걸었다. 그런데 마포구청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불법적인 내용이 있다’며 선본에 고지조차 하지 않고 마음대로 현수막을 철거해버렸다. 이후 선본에서 항의하여 직접 구청에서 다시 받아온 현수막을 걸었지만 이미 절반가량은 사라져버린 후였다.

3) 마레연은 1월 중순부터 마포구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Paris에서 열린 동성결혼합법화 지지 시위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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