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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과 함께 멈춰버린 철거민들의 삶

온 국민이 분노했던 용산철거참사가 4년이 지난 2013년에도 용산 철거민들의 삶은 재개발이 멈춰버린 그 공허한 부지만큼 제자리에 머물러있다. 서둘러 철거하고 거주자들을 내쫓았지만, 아직 빌딩도 들어서지 않은 채 공터로 남겨져 있는 세 곳 중구 순화동, 일산 덕이마을, 김포 신곡마을에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고, 덜어야 할 짐도 많다. 용산참사위원회는 4주년을 맞이하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제 2의 용산 참사를 막기 위해 1월 14일부터 20일까지 범국민추모대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지만,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는 그 날의 기억과 지금까지 받은 상처는 생생하다.

2013년 1월 15일 용산철거 참사 4주기를 맞아 현장순회가 열렸다

중구 순화동: 서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발 디딜 틈 없던 식당가

덕수궁 대한문에서 출발해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중구 순화동이었다. 이제 그 곳에서 유가족들의 상처와 투쟁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곳에서 사랑하는 남편이자 자녀의 아빠인 故윤영헌씨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던 유영숙씨는 “행복했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이 곳에 다시 찾아오는 것도, 또 이 곳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차라리 빌딩이라도 들어서 있으면 덜 억울할텐데…” 라며 안타까워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몰아낸 이유가 고작 공터로 방치하기 위해서였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중단될 것을 무엇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내쫓았던 것일까.

용산철거 참사 중 목숨을 잃은 故유영헌씨의 아내 유영숙씨

부부의 삶의 터전이었던 ‘미락정’ 자리는 단순한 땅의 가치를 넘어서 가족들과 단란했던 추억이 담긴 곳이다. 책임자들은 단지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을 방치한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주거권을 빼앗아간 것이다.

일산 덕이마을: 도로 위 천막에서 7년째 생활하고 있는 네 모녀

불편한 마음을 안고 버스가 두번째로 도착한 곳은 일산의 덕이마을.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뒤로 하고 가구로 둘러싸여있는 천막에 세 명의 딸과 함께 살고 계신 김명자씨는 “추우실 텐데 커피 좀 드세요. 우리 애들은 지금 아르바이트 하러 갔어요”라며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시며 불편한 다리에 허리를 굽혀 커피를 타고 계셨다.

일산 덕이지구 도로변에 자리잡은 네 모녀가 생활하고 있는 천막

철거가 진행되기 전 덕이 지구는 가구점들로 가득 차 있던 곳이었다. 김명자씨는 거기서 약 200평이 넘는 가구점을 운영하며 세 딸을 키우던 성공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이제 별에 별 거 다 할 수 있어요. 맨 처음에는 감전될까 무서워서 전기선도 함부로 못 만졌어요. 이젠 고무장갑 끼고 하면 된다는 걸 배웠네요.” 이 힘들고 외로운 투쟁을 무슨 힘으로 견디고 있냐는 물음에 “제가 이런 거 안 하면 제 딸 세대들이 힘들어져요. 1퍼센트 만을 위한 나라가 되면 안되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목숨 걸고 싸울 겁니다. 제가 제대로 된 판례를 세워서 2세들한테 이런 거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이 힘든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희망에서였다. 덕이 지구 주변을 걷던 중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철거민은 정부에게 사람취급도 못 받는다” 라고 말하며,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 받지 못한 채, 화장실도 없는 천막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네 모녀는 여기서 2분 거리에 살고 있다.

김포 신곡지구: 아무도 남지 않은 유령마을

신곡지구는 마치 마을전체에 폭격을 맞은 듯 상태가 처참했다. 빈 건물들 곳곳에 낙서되어 있는 글들은 철거민들의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이 곳은 김포 톨게이트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해 공업단지가 들어서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90년대 말부터 계속되는 재개발 붐 덕에 여러 차례 땅을 사고 파는 것을 반복하면서 땅값은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아무도 남아있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불명의 화재 때문에 공장들도 남아있지 않아있다. 이렇게 방치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이 커다란 마을은 아직도 텅 비어있다. 시행사는 부도가 났고 자금이 없어 조합도 사라졌다. 그 결과 개발도 멈춰 딱히 하소연을 할 곳도 없고, 주민들은 생계를 찾아 하나 둘 떠나버렸다.

한때는 공업단지였지만 지금은 고라니가 출몰하는 빈 공터로 남은 신곡지구

이번 순회를 한 세 곳 모두 상황은 비슷했다. 세 곳 지역 주민 모두 서둘러 강제퇴거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심한 폭력과 모욕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지만, 수 년 전 빌딩이 철거된 자리는 아직 텅 빈 공터로 남아있다.

변화를 위해 ‘강제퇴거금지법’ 제정과 시민의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

무분별한 뉴타운사업의 시작으로 부동산시장과 시민들의 불안감은 지속되고 있지만 철거민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제공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 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토지주택의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모든 사람들의 거주권과 주거권을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인 권리로 규정하는 ‘강제퇴거금지법’이 제시되었다. 집은 인권이다. 강제퇴거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 중 하나인 주거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 하지만 내가 고통 중에 있는 철거민과 그 현장을 만나고 느낀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순한 동정심과 연민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다.

내가 만난 철거민들은 언론에서 무식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인 양 묘사해서 우려도 했었지만,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우리네 이웃이었다. 덕이마을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커피를 타 주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모습은 마치 우리 엄마 같았고, 공장을 잃고 속상해하시는 신곡마을의 아저씨의 씁쓸한 뒷모습은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만약 우리 가족이 집을 잃고 길거리 천막에서 살아야 한다면, 아버지의 삶의 현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같은 하늘아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어했던 막내 딸은 천막에서 지내는 엄마에게 예쁜 집을 지어주기 위해 진로를 건축공학으로 바꿨다.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기본적인 삶의 권리마저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화나고 부끄러웠다. 부조리한 상황을 외면하는 권력자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관심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일이었는데, 언젠가 나도 부조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거권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다. 나의 문제와 연관시킬 수 없는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그 길도 함께 걷는다면 두렵지 않다. 우리는 서로 함께 연대하며 나아가는 길벗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강제퇴거 문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전 세계 공통의 문제입니다.

살던 곳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적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빈곤의 악순환을 겪으며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특히 심각한 캄보디아 강제퇴거 문제에 대해 캠페인을 계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연대와 지지가 인권침해를 막는 힘이 됩니다.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행동하다가 날조된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감 중인 캄보디아의 욤 보파를 위해 서명해주세요.

욤 보파를 위한 서명에 참여하기 

강제퇴거에 반대하다 잡혀간 13명의 마을주민 석방을 위해 시위하던 욤 보파 © Jenny Holligan

노르웨이, 아프간으로 송환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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