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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내 삶이었다: 재봉틀 하나만 건진 채로 쫓겨난 가족-소팔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100명 중 6명은 전세계 부의 59%를 차지하고 있고

80명은 적정 수준 이하의 주거환경에 살고 있고

50명은 영양부족

1명은 빈사상태……

좋은 집에 살고, 먹을 게 충분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어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의 사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중


캄보디아 강제퇴거 <소팔> 2009.1.24

캄보디아 강제퇴거 ⓒAmnesty International

소팔은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데이 끄라홈에 살고 있는 네일아티스트였습니다.

“마을에 강제퇴거가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이웃끼리도 사이도 좋고 정이 넘쳤죠. 데이 끄라홈에서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참 자랑스러웠어요. 왜냐면 제가 네일아트로 돈을 벌어 조카도 돌보고 학교에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정부의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시행된 개발

어느 날 소팔은 데이 끄라홈에 신 정부 청사와 고급호텔 등의 빌딩들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일대는 순식간에 알짜배기 부동산으로 주목되기 시작하였고 그 사이에 캄보디아 정부가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7NG라는 개발 회사에게 데이끄라홈의 토지소유권을 양도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보상과 협상

개발 회사는 당장 주민들에게 ‘대체주거지’로 이주하거나 ‘8000달러의 보상’을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을 가했습니다.

주민들을 향한 폭력과 예고 없는 강제퇴거 시행

터무니 없는 요구에 소팔과 대부분의 주민이 그 제안을 거절하자, 정부는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했습니다. 주민들은 투쟁에 들어갔고 3년 간의 긴 투쟁 끝에 회사는 20,000달러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퇴거가 일어났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09년 1월 24일 새벽 2시,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과 용역이 단 몇 시간 만에 소팔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을 부숴버렸습니다. 주민들의 힘으로 강제철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소팔은 급하게 챙겨 나온 것 이라곤 재봉틀 하나였습니다.

지금 소팔은 살던 곳에서 25km 떨어진 낡고 허름한 정착촌으로 밀려나면서 직장을 잃었고, 결국 생계를 잇기 어려운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의 온기가 가득한 고향으로부터 추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곳에 온 이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 중 하나가 남편이 매일 프놈펜으로 일을 가야 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데이끄라홈에서처럼 함께 살지 못하고 따로 사는 거에요. 교통비가 너무 비싸니까 남편은 한 달에 한 두 번만 집에 와요.”

용산 4구역 강제퇴거 2008.11

용산참사 ⓒ연합뉴스

 

2008년 11월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추진한 용산일대 재개발

용산에 4구역에서 영업을 하던 많은 세입상인들은 어느 날 용산에 재개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서울시의 도시정비사업으로 용산 4구역 재개발이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땅값이 오르고 상인들은 장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

재개발이 결정되자 재개발조합은 세입자에게 보상비를 지급할 테니 지금 장사하고 있는 곳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합이 제안한 보상비로는 생계와 주거를 이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인들은 “철거하면 당장 생계를 이을 수 없으니 대체 상가를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달라”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겨울에 예고 없이 시행된 강제철거

그러던 중 2008년 11월 겨울날 용산 4구역의 강제철거가 일어났습니다. 철거민들은 보상금으로 집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겨울에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주민들은 2009년 1월 19일 용산 4구역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점거농성을 벌였습니다.

다음날인 1월 20일 새벽, 특공대원이 세입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남일당 건물에 불이 났고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후 남겨진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은 전보다 힘겨운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팔과 남편과 아이 ⓒAmnesty international

“여기 살면서 단 한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비참하게 살아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말이죠.

강제퇴거는 비단 캄보디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과 과정이 너무도 흡사해서 마치 한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기업과 정부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생계마저 잇기 어렵게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말하는 경제개발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정부의 경제개발의 그림자 속에 시행되는 강제퇴거는 오히려 국민들을 빈곤의 문제에 빠뜨리고 이러한 빈곤의 문제는 결국 인권침해를 일으키게 됩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입니다.

적절한 주거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위해 액션에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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