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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발견하는 인권 : 캄보디아 벙깍 강제퇴거 지역 방문기

먹고 살만해진 후에 인권? 먹고 살기 위한 인권!

캄보디아 벙깍 강제퇴거 지역 방문기

벙깍 호수라 해서 너른 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호수는커녕 연못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래로 가득한 드넓은 운동장 같은 느낌이었다. 매립한지 4년이 지났다. 한 때 4000가구 이상이 북적이며 살던 호수는 황량한 벌판이 되었다. 어디서 가져온 모래인지 모래를 뒤적이면 조개껍질을 주울 수 있었다. 이제는 웬만한 가정은 다 떠나고 200여 가족이 남아 여지껏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매립되기 이전의 벙깍호. 벙(Beoung)이라는 말 자체가 캄보디아말로 호수라는 뜻이다. 프놈펜의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이며 과거에는 관광객들의 숙소가 많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출처 : Derek Stout/Phnom Penh Post

9월 16일 일요일, 아침 여덟시에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가보기로 했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도로로 나가 오토바이를 한 대 잡았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이 없는 이곳의 대중교통수단이다. 며칠 전에 만났던 한 활동가가 프놈펜 호텔 뒤로 들어가면 된다고 해서 프놈펜 호텔로 가달라고 했다. 20분쯤 프놈펜 시내를 달려서 호텔 앞에 내렸다. 가격은 1달러.

막상 내렸는데 호수가 어딘지 모르겠다. 무작정 호텔 뒤로 들어갔는데 길도 여러 갈래고 행사를 하는 곳이 어딘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벙깍을 물으면 여기가 벙깍이라고 했다. 행사에 대해서 얘기해봤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난 캄보디아 말을 모른다. 내가 들고 있는 활동가의 명함을 건네며 전화를 부탁해도 사람들은 안 된다는 말만 한다. 막막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고 휴대폰도 없는 곳에서 명함 한 장,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온 내가 바보 같기도 했다. 그냥 돌아가기엔 아까워서 좀 더 헤매보기로 했다.

이곳 저곳 다녀보다가 무작정 한 골목 안쪽으로 걸어 가봤다. 그 때 뭔가 단정히 차려 입은듯한 세 분의 아주머니가 선물 같은걸 들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뭔가 예감이 와서 따라갔다. 10분쯤 걸었더니 천막이 쳐져 있고 음식이 차려져 있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두리번대는 나에게 한 사람이 와서 어딜 찾느냐고 묻는다. 벙깍..강제퇴거,,일주기 행사.. 등등의 몇 마디를 하니 잘 왔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시계를 확인하니 여덟시였다. 간발의 차이로 벙깍 주변에서 헤매다 돌아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뭔가 감격스러웠다. 찾고 보니 매립된 벙깍 호수지역이 바로 저편에 언덕처럼 보였다. 찾기 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그렇게 벙깍 주민들을 처음 만났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부쉈던 작년 9월 16일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의 모습. 벙깍에 계속 남아서 투쟁하는 주민들 뿐 아니라 이미 이사간 벙깍에 살던 주민들, 다른 강제퇴거 지역 주민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 김성민

곧이어 시작한 행사는 낯설지 않았다.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익숙했다. 이날 행사는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나 사람들의 집을 부쉈던 작년 9월 16일 기억하기 위한 1주기 행사이다.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답게 불교 의식으로 시작해서 기도를 하고 향을 피우고 설법을 들었다. 용산 문제가 한창 이슈가 됐을 때 남일당 옆에서 매일 진행되던 예배가 떠올랐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사업장 앞에서도 진행됐던 미사도 떠올랐다. 한쪽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경찰의 폭력장면, 집회를 하던 장면, 집이 부서지는 사진 등등. 여느 투쟁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폭력과 저항의 모습들이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다. 이날 행사때도 한 스님의 설법이 있고 여러 스님들이 자리에 앉은 후에 주민들이 공양을 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김성민

허수아비 여섯이 서 있다. 벙깍을 개발하기 위해 땅을 임대한 기업, 그 기업에 땅을 임대해준 정부, 마을사람들의 평화로운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경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물이 넘치든 말든 호수에 모래를 부은 개발자들을 뜻한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한통속이라 했다. 거액의 뇌물이 오고가고, 큰 돈을 벌고자 하는 그들에겐 돈과 땅이 전부이지 사람들은 안중에 없다 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허수아비에 모래를 먹여주고, 돈다발을 넣어주었다.

정부관료와 부패한 기업인들을 상징하는 허수아비에 한 소녀가 가짜 돈을 넣고 있다. 이들은 돈을 넣으며 “여기 돈을 많이 드릴테니, 우리의 땅과 집을 빼앗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한다. ⓒ 김성민

허수아비를 들고 행진을 하고 매립된 호수 입구에서 허수아비를 불태울 때 사람들은 분노와 슬픔에 가득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벙깍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기업에 땅을 빌려준 정부, 어느날 갑자기 호수에 모래를 부어 마을에 물이 넘치고 이에 항의하던 사람들을 때리고 구속했던 경찰, 어느날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순 기업의 불도저와 포크레인들을 생각해보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심정은 전해져 왔다.

부패한 정부, 탐욕스러운 기업, 폭력적인 경찰들을 상징하는 허수아비에 마을 사람들이 부패와 땅을 상징하는 돈과 흙을 붓고 매립된 호수 입구까지 행진 한 후 불을 붙이고 있다. 한 주민이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고 있다. ⓒ 김성민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날 마을회관으로 데려갔다. 커다란 솥에 커리와 갈비찜 같은 잔치음식들을 잔뜩 해놓고 함께 먹었다. 신기한 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답게 커리를 바게뜨에 찍어먹는 것.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몇몇 서양인 기자와 사진 작가들이 있었지만 동양인인 외국인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했다.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고 앰네스티 회원인데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한국에 있는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이야기 해줄 생각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너무 반가워했다. 앰네스티가 자기들을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특히 지난 6월에 15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앰네스티가 낸 성명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그때 구속됐던 사람들이 누구라고 소개도 해줬다. 그러면서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욤 보파라는 마을 주민이 있는데 앰네스티에서 알고 있냐고 몇몇 사람들이 질문을 해왔다. 그러면서 꼭 좀 풀려나게 해달라고 부탁 했다.

앰네스티 보고서의 주인공이었던 텝 베니. 지난 6월 구속됐었다가 앰네스티 등의 시민단체의 탄원에 힘입어 풀려났다. 당시 베니를 비롯한 15명의 주민을 풀어달라는 시위를 했던 욤 보파라는 시민이 누명을 쓰고 구속돼 있다. 베니의 집에서 베니가 욤보파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욤보파의 석방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뒤로 보이는 노란 깃발은 ‘강제퇴거 중단’이라는 뜻. ⓒ 김성민

프놈펜에 머문 일주일 동안 벙깍의 주민들, 강제퇴거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몇 차례 만났다. 그들은 매우 바빴다. 훈센 총리의 집 앞, 법원 앞 등 각종 정부기관 앞에서, 각국의 대사관 앞에서 연일 집회를 했다. 특히 내가 캄보디아에 머문 기간 동안 캄보디아의 정부와 NGO간의 정례 미팅이 있었는데 그 때 가장 뜨거운 이슈중 하나가 강제퇴거 문제였다. 이는 연일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고 있을 만큼 뜨거운 이슈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계속 생기니 주민들은 매일 집회를 하느라 지쳐있었고 생계도 위협을 받는다고 했다. 한 아주머니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책을 사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내게 말해줬다. 뭐라 위로의 말을 건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벙깍은 가장 널리 알려진 성공적인 투쟁 사례다. 아직까지도 94가족이 계속해서 벙깍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3000가구가 넘는 집들이 변두리로 쫓기듯 옮겨 갔지만 벙깍은 그래도 남아있던 주민들이 계속 살수 있도록 하겠다는 훈센 총리의 약속을 받아 냈다. 벙깍에 남아서 투쟁하던 주민들은 이제 강제퇴거 활동가가 돼서 다른 지역의 강제퇴거 대상지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강제퇴거 반대운동을 하는 HRTF(Housing Right Task Force)의 활동가 김희앙씨는 수도 프놈펜에만 410개의 마을이 재개발 대상지라고 말했다. 수도 밖으로 나가면 더 광범위하고 폭력적인 일들도 많이 벌어진단다. 단순히 벙깍과 같은 한 두 지역뿐이 아닌 강제퇴거에 대한 전반적인 법과 제도의 개선에 대해서 요구해야 할 이유이다.

바니의 집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주민과 활동가 몇몇분과 기념촬영을 했다. 평범한 벙깍의 주민이었던 바니는 이제 제법 유명해져 마을을 대표해 발언도 하고 다른 철거지역의 주민들과도 함께 집회에 나가고 인터뷰도 하는 활동가처럼 보인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입고 나온 바니의 티셔츠 문구가 인상적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 관심과 지지가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이유다. ⓒ 김성민

캄보디아는 한국이 한창 경제개발을 하고 있었던 7,80년대에 전쟁을 치뤘다.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98년, 이후로 15년이 지났지만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어디서든 전쟁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지뢰로 인해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 어느 지역에 가도 있는 전쟁 희생자들의 유골탑, 폴포트가 사람들을 죽였던 킬링 필드. 내가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는 지금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전쟁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강제퇴거문제도 긴 전쟁으로 인한 복잡한 토지문제의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치열하다. 적극적으로 기업에 땅을 빌려줘서 투자를 유치하고 공장을, 빌딩을 짓고자 한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퇴거는 경제개발과 전쟁 상처 극복의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여행 중에 만난 캄보디아 인들은 한국인인 나를 반가워했다. 빅뱅이나 슈퍼주니어와 같은 아이돌 그룹의 포스터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내가 묵는 숙소의 직원들은 저녁때면 함께 모여 한국드라마를 본다. 대중문화만이 아니다. 한국은 캄보디아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프놈펜 거리 어디서든 한국어 학원을 만날 수 있다. 학원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 한 학생은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고 말해줬다. 심지어 어느 게스트 하우스 직원은 한국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묵는 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 숙박비를 깎아 주겠다고도 했다. 앙코르와트로만 캄보디아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에게 캄보디아는 생각보다 가깝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였다. 프놈펜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앰네스티 조사관 루퍼트 씨도 한국이 캄보디아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며 한국 회원들에 행동을 기대한다고 했다.

앙코르와트를 찾는 외국인 중 한국인이 제일 많다고 한다. 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 <킬링 필드>를 보고 학살 기념지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 선교의 대상지로, 저렴한 노동력의 투자처로 캄보디아를 오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강제퇴거를 비롯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천년 전의 앙코르와트, 30년 전의 킬링 필드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강제퇴거를 우리가 기억하고 연대한다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멀지 않은 과거처럼 먹고 살기 위해 인권을 짓밟는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인권을 얘기하는 것으로 말이다. 인권이 먹고 살만해진 다음 누리는 어떤 사치품같은것이 아니라 집과 생계를 잃고 쫓겨나는 사람들의 먹고 살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나의 작은 힘을 보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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