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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불쌍하거나 위험하거나?

한국의 노동 문제는 여전히, 열악하다. 최저시급으로는 밥 한 끼, 커피 한 잔 사먹을 수 없다. 그 돈으로 서울의 월세, 하숙세를 감당하며 등록금까지 내야 한다. 방값 40만원을 벌기 위해선 최저시급 기준으로 약 88시간을 일해야 한다. 하루 8시간씩 11일을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취업 시장에서 청년들은 창의력과 열정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되기를 요구 받고 있다.

취업을 해서 최저시급을 벗어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하는 일은 같아도 비정규직으로 차별 받고, 잦은 야근이나 휴일 근무에 시달려도 응당 받아야 할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땅히 쓸 수 있는 휴가도 꿈도 꾸지 못한 채 회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많다. 노조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직도 ‘보수’언론들은 노조를 연봉인상만 요구하고 툭하면 파업이나 해서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강성노조’의 틀 안에서만 다룰 뿐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의 화려한 이면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병에 걸리고 소외 당하고, 부품처럼 쓰여지고 버려지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국민에 대한 노동의 가치와 대우가 이러한데, 하물며 이주노동자들에 대우는 어떠할까? 더군다나 그들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 출신으로 위험하고 고단한 3D 업종에서 종사하는 ‘무시 받기 쉬운’ 처지인걸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착취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지는 설명하기도 새삼스럽다.

2012년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이주노동자는 70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주노동자들의 상황과 대중적인 감정을 떠나서, 이제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 자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하나의 상황, 의제, 현상이 되었다. <반두비>나 <방가? 방가!> 같은 이주노동자 소재의 영화가 세간에 회자되고, 보수여당을 자처해 온 새누리당에서 이주여성 이자스민씨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낙점한 것도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이들을 끌어안고 갈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문제는 쉽게 접근하고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착취 당하고 핍박 받으며 인간다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있는 것도 현실이고, 이주노동자에 의한 범죄 발생이나 사회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만 갈려있다. ‘다문화 VS 이주노동자 혐오’의 구도가 그것이다. 한쪽에선 덮어두고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모든걸 포용하라 말하고, 한쪽에선 싸잡아서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로 욕한다. 그러나 과연 이들 중 정말 이주노동자들의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려 노력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독립다큐 <우리가 원하는 것>은 18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온 ‘미누’를 중심으로 모인 이주노동자 밴드 ‘Stop Crackdown’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기록물이다. 이주노동자의 서러움과 고통을 노래로 표현한 이들은 그 나름의 울림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미누’는 지난 2009년 추방 당했지만, ‘스탑 크랙다운’은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어울려 살 수 있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노래하고 있다.

(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난 3월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 되었으며, 오는 5월 서울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

눈물로 피 쏟은 잘린 손목을 싸안고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에 갔네.

사장 좋은 차는 작업복 나를 싫어해

사장 하얀 손 기름 묻은 나를 싫어 해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품에 넣고서

화사한 봄빛에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나는 미친 놈처럼 한 없이 헤매 다녔지

프레스로 잘린 잘린 손을 이젠 눈물로 묻어 버리고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 날 때까지

눈물로 묻었네. 눈물로 묻었네.

–      Stop Crack Down, <손무덤> 中

20년 전의 92년 LA 흑인 폭동을 기억한다. 흑인들이 인종적 분노를 폭발시켰던 주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류세력인 백인이 아니라 한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이었다. 6일간 걸친 이 광란의 폭동으로 코리아타운의 90%가 파괴되었다 한다. 한인 업주들은 총을 들고 가게를 지켰다.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은 그들의 경제적 수탈을 저지른 ‘이방인’ 취급을 받고 공격 당했다. 2007년에는 32명이 숨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한국 이민2세 출신의 조승희가 지목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한국인들이 범죄자나 살인자 취급 받지는 않았다.

같은 해,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외국인보호소에 화재가 발생해 여기에 감금되어있던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불에 타 죽고 4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한국은 자국민의 해외진출이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다. 다른 나라에 안정적으로 정착을 하고,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자랑스러워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지성도, 추신수도 이주노동자다. ‘토종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피가 조금만 섞여도 ‘한국계’라며 설레는 눈길을 보낸다. 하인즈 워드가 그랬고, 해프닝을 낳았던 다비드 실바가 그랬다. 이 기준에 의하면, 세계은행 총재는 한국인이고 19대 국회 이자스민 의원은 필리핀인이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케냐인이나 인도네시아인이 되야 맞는 것 아닐까?

‘불법체류자는 추방해야 된다’ 라는 말의 표피만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악용되고 있고,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산업재해로 팔다리를 잃어도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허다하다. 그들 모두를 싸잡아서 강간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이방인 취급하는 것이, 폭동을 저질렀던 가해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2012년 대한민국이란, 그저 ‘한국인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이길 바라는 건지, ‘세계 속의 한국’에는 열광하면서 ‘한국 속의 세계’는 보기 싫은건지.

하지만 그런 이중성을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부족했던 것은 그들을 나와 똑같은 노동자로, 나와 똑같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다큐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직접 눈 앞에서 그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사실 흔하지 않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초대해 이루어지는 ‘맛있는 인권’(5월 1일, 동대문 에베레스트)과 이주노동자 메이데이(4월 29일, 보신각) 행사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미디어에 의해 가공되어진 ‘불쌍하거나’ ‘위험한’ 이주노동자가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 당신을 초대하고자 하는 이유다.

네팔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맛있는’ 인권에 함께해 주세요.

on.fb.me/HS04bN

4월 29일 이주노동자의 노동절에 함께 해주세요.

http://bit.ly/Joikxg

자메이카: 경찰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 샤켈리아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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