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불온서적 파면 군법무관 박지웅 회원을 만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불온서적 파면 군법무관 박지웅 회원을 만나다

베스트셀러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국방부의 결정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파면을 당했던 전 군법무관 박지웅 회원님을 기억하시나요?

박지웅 회원님을 만나 그동안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싸워왔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본인의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불온법무관’입니다. 2008년 10월에 헌법재판소에 군내 불온서적과 관련한 소송을 냈고, 2009년 3월에 옷을 벗었습니다. 그렇게 파면을 당하고 나와서는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했고요. 3월 말쯤 연거푸 패소를 하면서 민변 사무처에 와서 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자유권을 위한 투쟁을 해보고자 한 것이죠. 공식적으로 2011년 8월 16일 항소심에서 파면 취소판결 받고 군법무관으로 복직했지만, 바로 정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앰네스티에 관심을 갖고 회원이 되셨나요?

기본적으로 인권문제에 있어 국제연대에 가장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파면되어 있는 기간 동안에 UN인권이사회에 가기 위해 앰네스티 리포트를 보면서요. 앰네스티에서 뭔가를 함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기부도 하고 싶었고요.

군법무관을 하면서부터 제가 결심을 한 것이 내 월급의 2%는 꼭 기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말이죠. 군법무관 당시 200만원을 받았는데 이 중 4만원을 후원하면서, 그렇게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부터 후원을 늘리기 시작했고요. 지난 1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상을 받고 상금으로 3백 만원이 생겼는데, 이것도 서울영상집단부터 인권센터 건립, 표현의 자유 연대기금 등에 다 기부했어요.

 

 

군법무관 되기 전, 사법시험 합격 전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제가 성격이 괄괄하고 술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도 좀 계산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시를 붙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약해서 공부를 할까라는 생각들이 많았죠. 주변의 관계들도 그렇게 정리가 되었고요. 사시는 고시공부 2년 반 후 24살에 합격했어요. 고시가 전부였던 제 대학 생활에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불온서적의 헌재소송, 무섭지 않으셨나요?

2009년 당시 제 나이가 만 27살이었습니다. 행동에 있어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저는 젊었고, 순수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영준 변호사의 경우 저와 띠동갑입니다. 40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그런 결정을 하셨죠. 행동은 지식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있지만, 성격에 내재되어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의욕심이 있거든요.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헌재소송을 내면서 ‘좌천되겠다’, ‘징계 받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파면될 것이라고까진 생각을 못했죠.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용기’라는 걸 낼 때,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판단이 있어야 했고, 그 왜라고 하는 순간의 답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여러 예상 가능한 위험부담들이 있으니까요. 불이익이라는 부분들을 어떻게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었죠. ‘이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내가 해야겠다면 감수하겠다.’라는 생각에 도달했죠. 매년 군대에서 150명씩 죽고 있습니다. 군대의 특수성 인정하기 위해서 왜 군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 건지,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강했어요.

내부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셨나요?

내부절차라는게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문제가 있다. 시정해달라.’라고 요구했지만 시정 안 하죠. “너한테 해당되는 사항도 아닌데 왜 그러냐”라는 말만 돌아 왔고요. 군인들이 이런 생각이 있어요. 제가 다른 병사들처럼 영내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특권 다 누리면서, 피해도 없으면서 왜 그러냐는 거죠. 헌법재판소에서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현실적으로 군법무관한테 피해가 없다고요. 만약 1천명의 지역주민이 수해를 입었고, 이중 1명만이 소송을 냈다고 해서 나머지 999명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요. 헌법재판소가 이 말을 하고 있는 거죠.

 

 

파면되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파면되고 나서, 또 계속 패소하면서 부엉이바위에 오를 생각도 했었어요. ‘패소 당한 놈이 무슨 힘이 있나’ 싶었죠. 왜 해결이 안됐을까. 내가 이 사회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변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하고.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고 있어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으세요?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닮고 싶어요. 교과서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변호사법 1조에 기본적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나와요. 인권옹호가 당연한 건데, 많은 변호사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하죠. 법이라고 하는 건 사회 규율 체계인데, 가진 사람한테 유리하게 짜여있죠. 그래서 많은 변호사들이 그들을 위해서 일해야 돈을 버는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러다 보면 법 자체를 점점 더 가진 사람들에게 더 유리한 세상이 될 수 밖에 없잖아요. 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생각이 많아요. 이 사회의 기회균등이라는, 자유 못지 않게 중요한 평등문제, 이런 걸 변호사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 글은 2012년 001호 소식지 ‘회원이야기’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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