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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기획] 앰네스티 역대 언론상 수상작 ①잊혀진 사람들의 인권

“1961년에 ‘100여 년 전 노예 해방을 가져온 여론의 힘’에 관하여 글을 썼었지요. 오늘날에도 여론의 힘은 앰네스티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어 내는 데 필요합니다.”

– 국제앰네스티 창립자 피터 베넨슨

국제앰네스티는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부당하게 투옥된 포르투갈 청년들의 사례를 고발하며 시작됐습니다. 진실 고발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여론의 힘이 앰네스티 운동의 원리였지요.

사형제 폐지, 난민과 이주민, 여성, 빈곤. 오늘날 앰네스티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캠페인들의 주제입니다. 상대적으로 인권 운동의 역사가 늦었던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주제들이 공감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언론입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이주민과 다문화 사회, 노동과 같은 용어들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를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러한 언론의 기여를 격려하는 의미로 1997년부터 앰네스티 언론상을 시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앰네스티 언론상 제14회를 맞이하여 역대 언론상 수상작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인권 신장 역사에 한국 언론이 기여한 바를 다시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앰네스티 역대 언론상 수상작 ① 잊혀진 사람들의 인권

▷ 제8회 수상작 <동아일보 –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잊혀진 인권과 오마도 착취 사건>

▷ 제13회 수상작 <국민일보 –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요즘 영화 <도가니> 열풍을 보면서 진실과 정의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화학교 사건은 기사화된 적이 있었고, 동명의 소설도 베스트셀러였던 바 있습니다. 진실은 이미 드러나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은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나서야 재수사 요청과 당시 판결에 대한 비판이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진실이 정의 실현으로 이어지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 셈입니다. 그 시간만큼 피해자의 권리와 삶은 유예되었을 겁니다. 엄정하게 기록된 진실은 언젠가 힘을 발휘한다는 희망도 얻지만, 역사 속에 존재했던 폭력은 공공연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빼앗긴 삶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 집단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인권 침해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국가는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법을 통제하거나 이용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1968년 유엔총회는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시효부적용 협약’을 채택했습니다. 시효부적용 협약이란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서 공소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피의자 보호 장치인 공소시효가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면죄부로 작용하자 국제 사회가 취한 조치였습니다. 인권을 공식적으로 보장하는 건 법이지만, 법이라는 형식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우선한다는 뜻일 겁니다.

한국은 대표적인 전쟁 피해국가이지만 이 협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범 국가인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를 겪은 피해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은 사례가 극히 적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8회 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한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잊혀진 인권>, 제13회 수상작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보도는 역사 속에 잊힌 권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동아일보의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잊혀진 인권>은 우리 사회 뿌리 깊은 한센인 차별의 근원을 고발했습니다. 한센인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조선인이자 장애인인 까닭에 이중의 사회적 차별을 받았던 인권 소수자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국 한센인들을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이 같은 제도를 일본이 식민 통치하던 국가에도 적용했습니다. 일본 내에서조차 자국의 한센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공론화된 것은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입니다. 일본은 2001년 한센인 격리는 위헌이라는 판결과 함께 ‘한센보상법’을 제정했고, 2004년에는 한국 한센인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 변호사들이 방문했습니다. 이 보도는 일본 변호사들의 방문 당시 드러난 한센인들의 빼앗긴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후속 기사에서는, 일제 때부터 시작된 한센인 차별이 해방 후에도 이어져 ‘오마도 착취 사건’ 같은 역사로 되풀이되었음을 알렸습니다. 오마도 착취 사건이란 한국 정부가 한센인들의 노동력을 국책 사업에 이용한 뒤 약속된 임금과 재산 지급을 하지 않은 사건을 말합니다.

<일제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소록도 한센인들의 모습>

국민일보의 <일본 전범기업 시리즈>는 광복 전 일본 기업이 조선인에게 저지른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최초의 연재 기사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및 인권 침해 범죄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일본의 기업들이 집단적 인권 침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습니다. <전범기업을 고발한다> 시리즈는 일본의 전범기업들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 조선인을 노무에 동원하여 강제노동, 구금, 폭력과 고문 등 수많은 인권 탄압을 자행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일본 전범 기업들이 동원한 징용자들은 일본이 군 병력으로 징발한 조선인들보다 많았습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 못지 않게 전쟁 범죄 책임이 크지만, 지금껏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를 통한 공식적인 책임을 진 적이 없습니다. 일본 정부가 개별 기업의 사안이라는 논리로 책임을 회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기사 중 일본 기업에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의 모습>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시리즈는 진실 추적에 이어, 일본 정부와 기업의 배상을 얻기 위한 방법도 모색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 전범기업들의 전후 보상, 중국인 강제 징용자들이 배상을 얻어내기까지 과정을 보도하여 문제제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시간 속에 묻힌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발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돌려주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실질적 배상과 공식 사과는 국가 권력의 몫이지만, 핍박 받은 사람들의 역사를 복원하여 공론화할 수 있는 힘은 언론에게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은 진실 복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유엔총회의 ‘시효부적용 협약’은 인권에 공소시효가 없음을 천명한 협약인 동시에, 진실의 공소시효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권에 관한 공소시효 없는 보도가 더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 기사 원문 보기

*동아일보

[소록도 보상청구]日의원들 “가혹행위 이정도였었나…” (2004.06.04)

[오마도 사건 진실은]‘권력 횡포’에 짓밟힌 소록도의 꿈 (2004.08.23)

*국민일보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2009.11.15~2010.8.10)

 

na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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