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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거래조약에 참여한 한 변호사 이야기

“대규모 잔혹행위를 막는 또다른 방도”
세계적인 무기거래조약(ATT)이 드디어 발효되는 가운데, 수년 간 국제앰네스티를 도와 유엔의 조약 협상에 법적 및 정책적 자문을 제공했던 클레어 다 실바(Clare da Silva) 변호사와 대담을 가졌다.

 

2013년 4월 2일, 유엔총회는 표결을 통해 세계적인 무기거래조약을 최종 채택했다. ©Amnesty International

2013년 4월 2일, 유엔총회는 표결을 통해 세계적인 무기거래조약을 최종 채택했다. ©Amnesty International

 

Q. 무기거래조약 관련 활동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A. 우리 가족은 이디 아민이 우간다를 집권했을 당시 난민으로 캐나다에 이주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남매는 이디 아민의 독재 통치 하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들과,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망가졌는지에 대해 들으며 자랐다. 아마도 덕분에 캐나다의 다른 보통 아이들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시에라리온 내전 중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의 가해자들을 심리하는 특별법원에서 시에라리온 측 변호사로 4년간 활동했다. 전쟁 중, 대부분 무기를 이용해 벌어졌던 상상도 못할 일들을 매일같이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이 때의 경험 덕분에 무기거래조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대규모 잔혹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재판과 같은 소급적인 방식 외의 다른 방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재래식무기의 거래가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국제적 범죄를 부추기지 못하도록 하는 데 무기거래조약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Q. 무기거래조약 관련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A. 국제개발을 전공한 변호사로서, 처음에는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법적 권리 관련으로 주로 활동했다.

그러다 캠브리지대학교의 라우터파하트 국제법 연구소에 대니얼 베들레헴(Daniel Bethelehem) 소장의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때 국제앰네스티 무기와인권 자문위원인 브라이언 우드(Brian Wood) 씨를 처음 만났다. 국제적 무기거래를 규제하는 조약에 대해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브라이언과 동료들에게 대니얼 소장이 법률 자문을 제공했고, 이렇게 마련된 조약의 기본 골조는 이후 수년 간 계속될 로비 활동의 기초가 되었다. 나의 경우 브라이언과 다른 NGO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 주던 것이 발전하여, 무기거래조약의 채택을 위해 국제앰네스티와 아주 긴밀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Q. 무기거래조약 협상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A. 뿌듯한 순간들은 아주 많았다. 우리가 주창하던 표현들이 조약문 초안에 등장할 때마다 작은 목표 하나씩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무기 수출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수출된 무기가 “국제인권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저지르거나 용이하게 할” 위험에 대해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한 7조와 같이 최종 조약문에서 국제앰네스티가 사용하는 표현이 쓰인 것은 정말로 오랜 시간 고생해 왔던 국제앰네스티 활동가와 지지자 모두가 이룬 쾌거였다.

물론 난관도 있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2012년 6월 유엔에서] 첫 번째 협상 회의를 진행했지만 회의가 끝나고서도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했을 때였다. 그렇게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으로 돌아갔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당시 무기통제 조사관이었던 헬렌 휴즈(Helen Hughes)가 아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고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수년 간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조약 마련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데 대한 피로와 낙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3년 두 번째 협상 회의 끝에 마침내 더욱 강력하고 엄격한 조약이 마련되었으니 덕분에 최선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Q. 유엔 조약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국제앰네스티와 함께 활동하며 브라이언, 세이디 가사메(Seydi Gassame), 일마 페레스길(Irma Perez-Gil), 프랭크 조핸슨(Frank Johansson), 알베르토 에스테베스(Alberto Estevez) 등의 열성적인 활동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이 내가 모든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사무국이나 팀 내에서도 힘든 시기가 있었고, 다소 지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무기거래조약만을 위해 헌신하고 집중하며 이외에는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활력 넘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엔 조약으로서도, 국제법으로서도 무기거래조약의 채택 과정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규정의 채택 과정과 같이 매우 더디게 진행됐던 다른 절차에 비교하면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진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유엔 조약이 된 무기거래조약에 일찌감치 참여해 골조 마련부터 완성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내겐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Q. 협상 과정을 방해한 이들은 누구였나?

A. 어째서 일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협상 과정을 방해하려 들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유엔 논의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양보를 받으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조약 채택에 반대표를 던진 국가들을 보면 이유는 자명해진다. 이란과 북한, 시리아였다.

 

Q. 2013년 4월 2일 마침내 유엔총회에서 대다수의 찬성으로 무기거래조약이 채택됐을 때의 소감은?

A. 조약 준비에 다소나마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유엔총회 현장에서 무기거래조약 채택을 위한 표결 중 전광판에 숫자가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정말 뿌듯했다.

 

Q.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서 무기거래조약이 발효되는 첫 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는가?

A. 무기거래조약의 영향력은 단순히 더 많은 비준국을 확보하기 위한 숫자놀이 이상의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내 기준으로는 무기거래조약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알아보려면 조약을 비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국가의 국내법과 규제가 무기거래조약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약에서 금지하는 항목과 의무적 위험평가 항목이 얼마나 정확하게 법률과 관행으로 적용되었는지를 모두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 외교 등 무기거래조약을 초월하는 문제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무기거래조약이 재래식무기의 거래를 다소 제재할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성공적일 것이다.

또한 2015년 열리게 될 첫 번째 당사국회의 역시, 조약 당사국들의 재래식무기 거래에 관해 책임을 묻는 토론회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Another way to deal with mass atrocities’ – one lawyer’s role in the Arms Trade Treaty
With the global Arms Trade Treaty (ATT) entering into force this week, Amnesty International spoke to Clare da Silva, a lawyer who assisted the organization with legal and policy advice over many years through to the treaty negotiations at the United Nations.

What particularly inspired you to work on the ATT?
My family had come to Canada as refugees from Uganda during the time of Idi Amin. Growing up, my brothers and I often heard stories about the terrible things that happened under Idi Amin’s rule and how so many lives were destroyed. I think I grew up perhaps more aware than some other kids in Canada of what can happen, how others’ lives are and how important it is to work towards change in the world.
Also I worked as a defence lawyer in Sierra Leone for four years at the Special Court that was trying individuals for crimes against humanity and war crimes committed during the Civil War. Every day it was story after story of all these unimaginable things that happened to people during the war, often with weapons. That experience really reinforced the need for an ATT – that there needed to be another way to deal with mass atrocities than just retrospective mechanisms like criminal tribunals. I felt the ATT could in some way help to ensure the conventional arms trade does not contribute to international crimes, like what happened in Sierra Leone.

When did you start working on the treaty?
As a lawyer with a university degree in international development studies, I initially worked on legal rights issues in Southern and East Africa. Then I joined the Lauterpacht Centre for International Law at the University of Cambridge, as a Research Fellow working with the Director of the Centre, Daniel Bethlehem. And that is how I first met Brian Wood, an expert on arms control and human rights at Amnesty International. Daniel had been providing legal advice to Brian and others who had initially conceived of the idea of a treaty to regulate the international arms trade and a framework treaty was sketched out, which formed the basis of the subsequent years of advocacy. My pro bono legal advice to Brian and other NGOs eventually grew into a much larger role, working very closely with Amnesty International through to the adoption of the treaty.

What were the stand-out moments of the ATT negotiation process for you?
There were many moments of elation. Every time the words that we had been advocating for appeared in a draft text felt like a small victory. When Amnesty International language appeared in the final text, for example in Article 7 where an export is to be assessed for the risk that it might “commit or facilitate a serious violation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that was a triumph for the many, many years of work by all the committed Amnesty International staff and supporters.
Of course there were setbacks too. The most disappointing time was when we reached the end of the first negotiation conference [held at the United Nations in June 2012] and there was no agreement. I remember going back to the Amnesty International office and the researcher on arms control at the time, Helen Hughes, gave me a very sympathetic look as I walked in the door and I burst into tears – from exhaustion and disappointment that all of our hard work over the years had not resulted in a treaty. But in retrospect of course it was the best outcome because we ended up with a much stronger and more rigorous treaty by the end of the second negotiation conference in 2013.

What got you through the often tense UN treaty negotiation process?
Being surrounded by committed people from around the Amnesty International movement, like Brian, Seydi Gassame, Irma Pérez-Gil, Frank Johansson, Alberto Estévez and many others definitely was what carried me through that whole process. There were some very tense times in the room, and tense moments amongst ourselves as well as quite a bit of exhaustion. But being with people who were so committed and focused on achieving the ATT and who had no other agenda other than that was very energizing.

In UN terms and international law terms though I thought that the process of achieving the ATT was fast when compared to other processes like the Rome Statute [to establish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that moved at glacial speed. I was very lucky to be a part of a UN treaty from very early on in its development to its completion.

Can you describe some of the spoilers involved in the process?
I am still not sure why certain States wanted to actively obstruct the process; perhaps it was to try and get concessions out of States for things they wanted in other UN forums. In the end though who voted against adopting the treaty speaks for itself: Iran, North Korea and Syria.

How did you feel on 2 April 2013 when the treaty was finally adopted by a majority vote in the UN General Assembly?
Very happy and very proud to have been able to contribute in some way to the text. It was elation watching the numbers lighting up on the board during the voting in the General Assembly to adopt the treaty.

What impact do you hope the ATT will have in its first year as a legally binding treaty?
The impact of the ATT has to be measured beyond just the numbers game of racing to achieve more ratifications. For me, the measure of success will be the extent to which ratification means something, that national legislation and regulations are changed as a result of the ATT, and how clearly the prohibitions and the risk assessment obligations are translated into law and subsequent practice. There are always going to be issues that transcend the ATT – politics, foreign policy etc. – but if the ATT can infuse a level of restraint on the conventional arms trade then it will have been successful.

I also think that the first Conference of States Parties will be an important moment in 2015 because that it has the potential to be a forum to hold States Parties to account for their behaviour in the conventional arms 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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